기발한 자살여행(아르토 파실린나) 자살버스의 정차버튼을 눌러보자!


20131112
기발한 자살여행 Hurmaava Joukkoitsemurha
아르토 파실린나 Arto Paasilinna
김인순 옮김 2005
솔 출판사

삶이 무거워 질 때는 여행을 떠나자.


“파산이 문으로 들이닥치면, 사랑은 창문으로 날아가 버리는 법이다.”
p.94 기발한 자살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김인순 옮김, 솔

작가인 아르토 파실린나는 핀란드Finland 사람으로 무려 40여개의 작품을 쓰고 유럽의 작가상을 비롯한 문학상들을 수상하며 나름 블랙유머로 많은 독자를 둔 유명한 사람이다. 뭐 물론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옮긴이 김인순씨는 독어번역을 하는 사람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핀란드인이 쓴 이 책을 번역했다. 핀란드책은 1990년에 쓰여진 것 같다. (15년 뒤 한국 입성?)

“술을 마시면 간장과 췌장이 망가졌고, 음식을 좀 양껏 먹으려들면 혈관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했으며, 담배를 피우면 치명적인 암세포가 폐 속에 둥지를 틀었다. 뭘 하든 결과는 항상 나쁜 쪽으로 나타났다. 열심히 조깅을 하면 과로로 길에서 쓰러졌고, 조깅을 하지 않는 사람은 지나친 지방질 섭취로 관절이 망가지거나 척추에 문제가 생겼으며 결국에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p.197 기발한 자살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김인순 옮김, 솔

책에 대한 타인과 타 기관의 리뷰를 보면 쉽게 쓰인 글에 재치 있는 유머라고 전반적으로 평하고 있다. 약간은 공감하고, 또 약간은 그렇지 않다. 일단은 나의 배경지식에 탄식한다. 핀란드라는 자일리톨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 나라와 그 주변 북유럽에 대해서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책의 초반부에 짧게 설명된 정도로만 이해한다. 춥고 어둡고 우울하고 또 어떤 날은 해가 뜨지 않으며 자살률이 높다. 그리고 핀란드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적확한 유머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역사로 말하자면 더욱이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작가는 A를 해학하며 비꼬고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데 A가 무엇인지 모르는 격이다. 거기에 더해서 번역은 매끄럽지만 향신료가 없는 빵과 같다. 무맛무취의 단단하게 굳은 식빵처럼 형태와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으나 즐거움도 맛도 케이크를 장식하는 약간의 색깔설탕도 없다. 계속 빵만 먹으면 더 이상 먹기 힘든 것처럼 그런 점에서 쉽게 번역되었지만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제목은 정말 탁월하다고 본다. 기발한 자살여행. 여기에는 ‘기발’과 ‘자살’이라는 마음을 이끄는 단어가 있다. 자살에 실패한 두 남자의 만남으로 전국에서 자살자들을 모아서 모임을 열고 계획이 만들어지며 호화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유럽의 끝에서 자살하려는 장대한 꿈을 가진 무명인사들은 죽음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긴 그러나 삶은 충만하게 즐기는 여행은 그들의 삶에 다시 빛을 되찾아 준다. 책은 중간 중간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핀란드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하고 그들의 우스꽝스러움을 꼬집기도 한다. 그들을 뒤쫓는 경찰은 가차 없이 일중독으로 죽이면서도 모두들 죽은 줄 알았던 사기꾼은 물속에 꼬꾸라졌지만 살려주기도 한다.

삶이. 우울에 빠져있더라도 여행은 삶을 되돌려 준다는 확신을 받은 책이다. 여행가고 싶다고 강하게 느낀 책이기도 하다. 과거에 내가 떠났던 삶에 그리고 그날에 완전하게 충만했던 짧은 여행의 나날들이 추억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여행으로 떠난 사람들이 끝이 확실한 하루를 지낸다. 오늘 죽으면 어떻고 내일 죽으면 어떤가? 하루 미루더라도 어차피 죽을 텐데. 돈 걱정 없고 건강에 대한 더 이상의 염려도 없는 그리고 강한 지도자가 있는 여행이란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버스에서 가장 먼저 내리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끝이 눈앞에 보이는 말기암환자로 집단자살이 아니라 소박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결국 암호명 ‘공동의 시도’는 죽음에 한없이 가깝지만 삶을 열망하게 하는 시도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여행을 떠나보라고 하고 싶다. 책처럼 화려하고 재미있는 작은 일들이 펼쳐지는 여행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유럽전역을 돌아다니다보니 핀란드에 두고 온 자신의 문제가 하잘것없이 느껴지는 자살버스 탑승자들처럼 삶의 무거운 무게들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잠시 죽음을 뒤로 미루고 버스의 정차스위치를 누르자.

책의 본문과 책 표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솔출판사에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