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왕산 등반기


인왕산

등산을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해보니 서울의 여러 가지 산이 나왔다. 유명한 북한산, 관악산을 포함해서 서울의 10대 산이라는 산까지 서울근교에 산이 정말 많았다. 다시 검색을 했다. ‘초보 쉬운 산’으로 검색했다. 해발 300미터쯤 된다는 인왕산이 나왔다. 인왕산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높이도 높이지만 예전에는 비공개였던 산이 일반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도 아니고 벌써 10년도 전부터 개방된 산이지만 어쨌든 과거에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었다는 산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네이버지도에서 인왕산 지도를 A3크기로 뽑았다. 웬만큼 유명한 산은 지도를 뽑으면 등산로도 같이 표시되어 있었다. 인왕산도 그랬다. 보기엔 너무 쉬워보였다. 경로도 많았기 때문에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서 주요 바위를 기준으로 잡아서 등산로를 짰다. 타인의 블로그도 참고하여 괜찮다 싶은 곳에 표시를 해두었다. 올라가는 길을 독립문으로 잡았고 선바위를 거쳐서 정상을 찍고 자하문 쪽으로 내려오는 경로를 잡았다. 그 사이에 모자바위 기차바위 각종 바위에 표시를 해두고 가는 길에 유심히 보기로 했다. 공식 예상시간은 올라가는데 1시간 내려오는데 45분이다. 하지만 가는 길에 사진도 찍을 것이고 내가 체력이 어느 정도 따가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여유를 조금 두어 총 2시간 30분이면 산행을 마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일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서 오전에 산행을 하리라 결심했지만 아침부터 몸이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산은 오전이나 해가 지는 오후에 가야 보기 아름다운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강아지도 데려 갈 것이기 때문에 강아지 가방에 비닐봉지를 하나 덜렁 매달고 강아지 물과 내가 쓸 장갑, 모자와 마스크를 챙겼다. 강아지가 먹을 사료와 간식도 챙겼다. 내가 먹을 것은 스니커즈 정도로 생각하고 가까운 곳에 도착하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옷을 입어야하는데 등산복이 없으니까 그냥 추리닝 셋트를 입었다. 옷을 3겹이나 입고 내복도 입고 추리닝을 입었다. 신발은 그냥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 누가 봐도 멋이라곤 없는 동네 노는 형 룩을 완성해서 집을 나섰다. 갈 길이 멀다.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에서 다시 독립문역으로 향했다. 한 번 갈아타야하는 무려 1시간쯤 거리는 코스를 개 가방에 개를 넣고 덜컹덩컹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엔 잠이 들어버려서 어느 덧 종로 3가에 도착해서 3호선으로 갈아탔다. 갈아타는 와중에 내가 먹을 물과 초콜릿 바도 샀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가한 토요일 오후가 아니었다. 서울의 도심 한 복판에 그것도 중구에서 동네 노는 형 룩을 하고 개가 든 가방을 들고 다니기엔 너무나 세련된 도심 지하철의 모습이다. 얼른 내리고 싶은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독립문역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먼 산을 일부러 찾아왔을까 싶었지만 인왕산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하철 출구를 나와 조금 걸으니 인왕사, 선바위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내가 가진 지도를 보니 아직 조금 더 가야 내가 계획을 세운 경로대로 움직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표지판을 무시하고 조금 더 걷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지도어플리케이션을 켜고 인쇄해둔 지도도 손에 들고 길을 걸었다. 스마트폰이 내 위치를 잘 잡아주지 못한 것인지 나는 점점 위쪽으로 가고 있는데 아파트 단지만 계속 나왔다. 그 와중에 이 지역 사람들은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이 가깝고 서울 한복판에 살아서 출퇴근하기 쉽겠구나.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내 위치는 점점 내가 가려고 했던 방향과 멀어졌다. 모로 가도 산으로만 가면 되니 방향을 옆으로 틀었는데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서 산 쪽으로 걸어가니 전면에 콘크리트 절벽이 나타났다. 위로 갈 수 있는 계단도 아무것도 없었다. 고집을 부려 조금 더 올라가면 돌아가는 길이나 계단 같은 것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없었다. 결국 벌써 30분 동안 아파트단지만 헤매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까 입구에서 봤던 인왕산, 선바위라고 써져있던 표지판까지.

다시 시작이다. 표지판을 무시하지 않으리라. 나는 좁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내 위치를 보니 제대로 가고 있는 듯했다. 안심. 나는 걷기 시작했다. 기분도 상쾌했다. 아파트단지는 여전히 좌우로 있었지만 엄청 큰 암벽이 있어서 사진도 찍었다. 그래 인왕산은 현무암으로 만든 산인가? 그래서 돌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콘크리트로 만든 암벽이라서 실망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제대로 가고 있으리라. 걷다보니 인왕산인왕사라는 현판이 걸린 문이 하나 나왔다. 양쪽의 둥근 기둥에는 용그림이 그려진 문이었다. 얼씨구나, 제대로 왔구나. 그대로 돌계단과 바위들을 지나 걷는데 무슨 무슨 절이 참 많았다. 약간은 무당집 같은 느낌이 드는 여러 작은 집들을 지났는데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나 밖에 없었다. 하늘엔 새가 무리를 지어 푸덕푸덕 날아갔다. 잠잠해지나 싶더니만 다시 방향을 바꿔 반대방향으로 푸덕푸덕 날아갔다. 그 모습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나,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겠지?

그렇게 가다가 절 하나를 지나쳤는데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국사당 인 듯하다. 새는 여전히 푸덕푸덕 날아다니고 까마귀인지 무언가 까악까악 울어대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지 사람이 너무 그리운 찰라 선바위가 안내판이 나타났다. 어찌나 기쁘던지 안내판을 요리 찍고 저리 찍으며 사진을 찍어대다 선바위로 이르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무슨! 바위가! 너무나 기괴했다. 오늘은 뭔가 무서운 날인가? 첫인상은 너무 무섭다는 것과 기괴하다는 것. 바위 앞에는 3명의 여자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바위의 숭숭 뚫린 구멍에는 비둘기가 앉아 있었다. 비둘기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 하기도 하고 90도 바위에 기묘하게 앉아있기도 했다. 비둘기라기보다는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라는데 내가 이런 광경을 너무 오랜만에 본 탓이 크리라. 좌측에는 작은 유리찬장에 촛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밀납이 녹아내린 촛불과 선바위의 모습이 이상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Good afternoon.' 갑자기 난데없는 영어가 날아들었다. 외국인인가? 사람인가? 스님인가? 일반인인가? 예측할 수 없는 외모에 심지어 허스키 보이스로 영어를 날리는 사람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How are you?’여전히 대답을 못했다. 몇 마디 영어를 더 하셨는데 한마디도 답을 못했다. 영어로 대답해야하나? 한국어로 대답해야하나? 잡혀가는 건가? 그러다 갑자기 한국말을 하셨다. 내가 스님인데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셨다. 당황한 내 표정이 너무 웃겼는지도 모르겠다. 강아지와 함께 여기 온 걸 보니 강아지가 복이 많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셨다. 목소리가 내 뱉는 ‘하’같은 소리인데 허스키보이스라고 할 지 약간 쉰 목소리라고 할지 물기가 없는 마른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사람을 걱정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스님 맞구나. 나는 바닥에 있는 시멘트에 새겨진 개 발자국을 가리키며 여기도 개가 있는지 물었는데 개는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선바위의 기기묘묘함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위를 보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니 스님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스님을 따라가니 스님은 손짓으로 저쪽에 약수터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 쪽으로 가면 인왕산 정산으로 갈 수 있나요?’ 아니 저쪽은 막혀있어서 인왕산으로 가려면 다시 내려갔다가 이쪽으로 해서 저쪽으로 가야해.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가야해.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꽤 시간을 지체한 상태이므로 약수터에 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쪽으로 조금만 가보기로 했다. 살짝 걸으니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서울 같지 않은 바위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기묘했다. 바위를 돌아 조금 더 걸으니 작은, 그러나 아주 위험해 보이는 좁은 길이 나왔다. 더 걸어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계속 이렇게 걷다간 정상은커녕 집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왔던 길을 되돌아서 내려갔다. 같은 길인데 작은 절이 보였다. 창고 같기도 한 그곳의 벽면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더 내려와 선바위에 다시 들러 소원을 빌었다. 모처럼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위에 왔으니 소원은 빌고 가야하지 않을까 해서 강아지를 가방에 넣어둔 채 단상에 잠시 앉아서 소원을 빌었다. 주머니를 뒤져 시주함에 천원을 넣었다. 아까 그 스님에게 눈짓으로 인사라도 하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바쁘신지 뒤돌아보지 않으셨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 약수터가 나왔다. 설마 약수터방향으로 가면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없다고 했는데. 의심하며 조금 더 걸었다. 약수터에는 등산객 부부가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그들을 지나쳐서 길을 따라 다시 걸었다. 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바위에서 강아지 사진도 찍었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울려서 멋졌다. 그런데 다시 막다른길. 억지로 가면 갈 수 있겠지만 누가 봐도 정상적인 길은 아니었다. 다시 내려와서 아까 그 약수터에서 등산객 부부에게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인왕산 정상인가요? 남자가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들이 말한 방향으로 다시 걸었다. 돌계단이 멋스러웠고 작은 돌을 쌓아서 만든 탑이 곳곳에 햇볕을 받으며 무리지어 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니 사람들 뒷모습이 보였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한 계단 더 오르니 어깨가 다시 한 계단을 오르니 몸통이 보였다. 앉아 있는 3명의 여자와 서있는 1명의 여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 앞으로 암벽이 가로막고 서있었다. 막다른 곳인가? 서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색깔의 천이 매달린 막대기 들고 있었다. 먼지떨이 같기도 한 봉을 들고 있던 그 여자는 봉을 흔들면서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외할아버지가!!!!!!”

너무 놀라서 뒷걸음질 치던 나는 표지판을 발견한다. 내용인즉, 인왕산은 국립공원으로 무속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몇 마디를 더 하며 봉을 흔들던 여자의 말소리에 맞추어 앉아있던 여자가 느닷없이 꽹과리를 치기 시작했다. 꽹꽹꽹꽹~~~꽹꽹꽤굉. 뒷통수에 붙어있던 머리칼이 한올한올 섰다. 너무 무서웠다. 일단 정면은 암벽으로 막혀있으니 옆길로 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판을 벌이는 뒤쪽으로 걸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 나는 조금조심 걸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걷다보니 나무와 천과 온갖 재료로 만든 둥근 움막이 하나 보였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하얀 손이 언뜻 보였다. 다시 소름. 몇 미터를 더 걸었는데 다시 막다른 길이 나왔다. 이대로 산을 타고 올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 집으로 가야하나?

꽹과리 소리를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약수터로 왔다. 그 곳에는 3인의 등산객이 있었다. 등산모자! 등산옷! 등산화! 등산스틱까지 있었다. 그것은 궁극의 등산인! 에헤라디야!
인왕산 정산으로 가는 길이 이쪽인가요? 물었다.
우리가 그쪽으로 갈껀데 따라오세요.
그들을 따라 갔던 길로 다시 갔다.
그 쪽에는 암벽이 있고 막다른 길이 있던데요?
이쪽이 좀 헷갈리죠?
걸어가는 3인은 내가 혼자 갈 때와 속도부터 달랐다. 오르고 내리는데 총 2시간도 안 걸리는 산의 초입에서 이제까지 2시간 헤맨 나의 실력은 어린이 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길을 알려주는 귀인3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막다른 길이라 막혔던 바로 그곳에서 그들도 약간 헤깔려하긴 했지만 바로 옆에 마법처럼 다른 길을 찾아내고 그쪽으로 걸었다. 아마 다시 간다고 하더라도 혼자 간다면 같은 곳에서 헤매리라. 산을 비스듬히 올라서 몇 가지 바위를 지나 슉슉 걸으니 성곽에 도착했다. 혼자였다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을 훌륭하고 기묘한 바위들이 많았지만, 다시 혼자 남아서 길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 인왕산 후기를 보면 새로 만든 성곽 길을 따라 쉽게 등산하던데 적어도 그 성곽 길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귀인3인을 따라가야지.

지도에 표시한 해골바위, 모자바위 따위는 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다 바위를 찾고 사진을 찍으며 올라갔다면 전체 여정이 너무 길어졌을 것 같다. 성곽 길을 따라 걸으며 귀인 3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들은 초등학교 동창생이라고 한다. 약 40대쯤 돼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초등학교 동창이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며 산행을 한다니 놀랐다. 그들은 나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신발은 꼭 등산화로 바꾸라고 했다. 실제로 운동화를 신어서 많이 미끄러지긴 했다.

잠시 바위에 쉬면서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카메라에 저장된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개를 데리고 있었으므로 그도 개를 키운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 것인데 사진중 하나는 아주 괜찮았다. 또 서울을 내려다보며 데이트코스로는 북악 스카이웨이가 좋다는 둥의 말을 했다. 정말 좋다는데 나중에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의 한쪽은 청와대방향이라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팻말이 있었다. 아주 자세하게 잘 보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청와대가 그렇게 잘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군인부대는 자주 보였다. 철망을 쳐둔 곳에 군인 들이 있었고 등산로 곳곳에도 군인이 있었다. 조난당할 위험은 없겠지만 자연과 함께 라는 느낌은 덜했다.

가는 길에 정상처럼 보이는 봉우리를 하나 지났는데 그곳에는 웬 도사가 한명 앉아있었다. 정말 인왕산이 영험하긴 한가보다 도사에 무속신앙에 이것저것 참 많다. 어쨌든 바위에 앉은 그는 누가 봐도 도사로 보이는 행색에 수염을 기르고 빨간 모자를 쓴데다 어지럽게 엮여진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등산객 중 한 명이 아이구 도사님 이곳 까지 오셨습니까? 하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도사가 벌떡 일어났다. 벌써 가시려고요? 좀 더 계시지요 했는데 산을 내려가 버렸다.

그 모습을 뒤로 보며 3인을 따라다니랴 사진 찍으랴 정신없이 오르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정상 바위 언저리에 개를 앉혀두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어줄까 ?했는데 아니요 괜찮아요. 답하고 몇 번 더 사진을 찍었다. 이제 내려가야지 생각하며 3인을 찾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내려가는 길이 2군데라서 이쪽을 보고 저쪽을 보았다. 없다. 고맙다는 말도 못했고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도 못했는데 없어져버려서 너무 아쉬웠다. 서운하기도 했다. 바빠서 먼저 갔겠지. 아니면 내가 너무 사진 찍는데 열중해서 그들이 인사하는 것도 못 들었을까? 갑자기 혼자가 되고 보니 바람이 서늘했다.

오르는 길에 그들의 대화에서 언뜻 들었던 방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내려가는 길에 만날까 했지만 끝까지 만나지는 못했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오르는 사람들의 숨찬 모습이 보였다. 나도 저랬겠지. 몇몇은 개에게 개도 오르는데 내가 못갈 소냐 하며 힘을 냈다. 전반적으로 개에게 사람들이 친절했다. 개도 산을 오르냐며 격려도 해주셨고 개는 네발이라서 쉽다고도 했다. 개와 함께 라서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을 자주 받긴 했지만 내려가는 길에 갑자기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았는데 커다란 바위에 남자 두 명이 걸터 앉아있었다. 거기 까지 올라 간 것도 신기하지만 일상복차림으로 걸터앉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뭔가 기묘했다.

갈림길에서 치마바위로 갈까 그냥 자하문 쪽으로 내려올까 고민을 했다. 치마바위에 사람들이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지만 체력문제로 그냥 자하문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그리고는 죽 새로울 것 없이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예전의 돌과 새로 쌓은 돌이 어우러져 성곽을 이루고 그 돌 틈으로 풀이 자라고 있는 광경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길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군인이 더 많아졌다. 산을 올라가서 정상에 갔을 때조차 이 정도면 매일 와도 괜찮겠는 걸? 하면서 우쭐했었지만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특히 종이라가 많이 당겼다.

다 내려오니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보였다. 연인과 가족과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두 예쁘게 꾸미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경극스럽게 선크림을 하얗게 얼굴에 바르고 주워온 듯한 추리닝 세트를 입고서 허리춤에는 강아지 줄을 묶고 개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주민이었다. 얼마나 동네주민처럼 보였으면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왔다. 주변에는 강아지와 함께인 동네 주민이 많이 보였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온 남자들도 많았다. 나뭇가지엔 노란 꽃이 피어있었고 광장에는 커다란 리트리버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봄이구나. 봄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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